NTB 엔딩 - 아그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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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데심 기반 극시리어스 2차커뮤에서 썼던 엔딩로그 아그리아스편

상황설명: 팡이랑 혐관쌓고 아쉐랑 친하게 지내다가 대 카오스 최종보스전하러 갔음

공평하게 소멸엔딩인데 kpc 에어리스의 기적의 힘으로 고통 없이 죽게 된 희망 루트

FFT 오베아그 요소 있음!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불길하고 장대한 힘의 기운이 점점 가까워진다. 거세지는 열기와 지천을 뒤흔드는 땅울림이 전진을 방해한다. 마침내 옥좌 앞에 다다른 다섯 명의 전사들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정한 혼돈을 목도한다.

한때 신이었던 존재는 이제 완전히 짐승의 모습이 되어, 여섯 개의 다리로 땅을 지탱하고 선 채 울부짖는다. 거대하게 뻗어져나간 두 날개의 딱딱한 표면이 여기저기 갈라져 그 사이로 용암이 흘러내린다. 어깨였던 표면을 가르고 거대한 가시들이 불거져 나왔고, 꼬리 역시 검붉은 가시들이 돋아난 채 위협적으로 흔들린다. 머리의 한쪽 뿔은 부러져 더욱 기괴해 보인다.

언어를 잃은 채 울부짖는 괴물은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절실히 염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처참한 모습에 전사들은 아연해진다.

조화와 혼돈의 균형은 깨졌다. 오랜 윤회의 끝에 스스로의 힘에 삼켜져버린 혼돈의 신은 이제 세계를 파멸로 이끄려 한다. 무너지는 세계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다섯 전사들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 로그 생략)

 

 

 

신의 몸에 있는 힘껏 박아넣었던 성검이 불꽃에 휩싸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연계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버린 몸은 다시 한 번 펼쳐진 지옥의 손아귀를 피하지 못했다. 충격파에 몸이 날아갔다. 동료들의 이름을 부를 새도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꺼질 듯 깜박이는 시야를 보라색 하늘이 가득 채웠다. 목구멍에서 피거품이 끊임없이 솟아올라 기도를 막았다. 숨을 쉬지 못한 채 땅바닥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몸이 발작하듯 움찔거리고, 그녀는 겨우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기침해 피를 쏟아냈다. 힘겹게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바닥에 핏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아그리아스는 자신의 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전사들의 시신들이, 혹은 아직 숨통이 붙은 몸뚱이들이 신에 바쳐진 제물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저 위에, 아쉐가 못박힌 곳이 보였다. 검을 놓쳐버린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가 없었다. 힘을 잃은 손이 몸 옆으로 툭 떨어졌다. 레이브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먼젓번에 그가 스러지는 검은 형상을 끌어안고 불길을 피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시체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결국, 아무도 구제하지 못한 것인가.

눈은 마지막 남은 빛을 본능적으로 찾았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성스러운 빛을 자아낸 천사가 고요히 눈을 감은 금발의 검사를 끌어안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입에서 피가 끝없이 흘러내리며 연분홍색 의복을 적셨다. 천사라고 생각했던 존재는 그들과 똑같이 피를 흘리는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희미한 기억의 한 조각이 되돌아왔다. 언젠가의 이발리스에서, 클라우드가 갈색 머리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 전투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적이 있었다. 소녀는 그가 찾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날 클라우드는 두고 온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에어리스. 최후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녀는 클라우드의 세계의 사람이었구나, 스러지기 직전 가장 찬란한 빛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인간의 인지를 초월하여 얽히고 이어진 세계들에 대해 알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세계의 동료들과 대화할 시간도 더는 주어지지 않는다. 수십 개의 검들이 몸을 꿰뚫기 직전 그녀는 눈을 감았다. 사라만드에서도 죽음의 고통은 한순간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금방 끝날 것이다.

하지만 예상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따뜻한 빛자락이 몸을 감싸안을 때 아그리아스는 눈앞이 하얗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


풀내음이 났다. 도랑물 소리,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고요한 공기만으로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어둠에 먹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일텐데, 아니, 복제된 장소에서는 해를 볼 수 없었다. 눈을 찌르는 햇빛과 새소리는 진짜 오본느의 것이었다. 오래된 떡갈나무 문이 열리는 둔중한 소리를 들었을 때 왜인지도 모르게 심장이 조여들었다.

눈을 떴다.

아... 있었다. 햇빛 아래로 흰 옷을 입은 고결한 얼굴이, 그녀의 오벨리아가 고개를 기울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백금발을 한 가닥 땋아내린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가느다란 발목이 천천히 수도원의 돌길을 밟았다. 전부 그녀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목구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제서야 다시 만난 분께 그런 얼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대신 아그리아스는 엷게 미소지었다.

"바깥이 쌀쌀합니다. 들어가 계세요."

"이런 날씨엔 밖에 나가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밖이라고 해 봐야 손바닥만한 수도원 앞뜰의 돌 계단과 풀밭과 도랑, 그 앞의 정문까지가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의 전부였다. 아그리아스는 왕녀의 어깨에 주홍색 숄을 덮어주었다. 열다섯 번의 여름과 겨울을 차가운 돌 건물 안에 갇혀 보낸 오벨리아는 날이 지날수록 부쩍 갑갑해했다.

"수도원 바깥 구경, 언제 나갈 수 있을까."

"곧이요. 왕가에서 허락이 나면 이곳 바깥뿐만이 아니라 왕도 르잘리아에 가실 수 있을 거에요. 그곳은 훨씬 더 사람이 많고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곧이라는 말이 기약 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두 명 다 알고 있었다. 왕녀가 아그리아스의 허리에 매인 대검의 힐트를 습관처럼 매만졌다. 평소라면 다른 자가 자신의 무기에 손대는 행위를 용납치 않았겠으나, 오벨리아는 그것과 기사의 다른 모든 금기들에서 예외로 존재했다. 스스로를 다치게 할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음유시의 기사들은 여러 왕국들을 여행하며 명예로운 전투로 이름을 드높인다지. 너도 다른 왕국에 가본 적이 있니?"

"견습 시절에 올다리아에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으니 이름을 드높이지는 못했죠."

"아쉽구나. 너라면 전쟁에서도 잘 싸웠을 텐데."

"기사단은 왕실 소속이고 저는 아직까진 주로 근위 임무를 맡아와서, 왕도를 떠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나도 검을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생각보다 멋있는 일은 아닙니다. 매일 손에 상처가 나고 물집이 잡혀서 아프실 거에요."

"아픈 건 상관 없어."

아그리아스는 장갑을 벗었다. 마디가 굵고 힘줄이 파랗게 불거진, 굳은살투성이의 손으로 왕녀의 하얗고 가는 손을 감싸잡았다.

"제가 쓰는 검은 오벨리아 님께선 들어올리기조차 무리이실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변치 않으신다면, 단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정말? 약속한 거야?"

꿈 꾸는 듯한 무표정이 깨지며 환한 웃음이 쏟아져나오는 눈부신 광경을 아그리아스는 눈에 가득 담았다.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줘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시리게 아팠다. 오본느에서 지내는 동안 자유롭지 못한 왕녀의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 그녀는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하나씩 쌓아갔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찔러넣어야 하는지만 안다면, 훈련받지 않은 여성으로서도 단검 정도는 호신용으로 쓸 수 있었다. 혹시나 자신이 그녀를 지키지 못하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안다면 좋지 않을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된 훈련을 받아왔다면 힘들었겠구나."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은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제 또래의 레이디들이 가지는 취미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구요."

"후회하니?"

이상한 울림이었다. 기사가 된 것을 후회하니? 그런 물음이었을 것이다. 아그리아스는 이 대화를 기억했다. 그때는 아직 확신이 있었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고된 시간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게다가, 이 다음은 말로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당신을 만났으니 후회할 일 따위는 결코 없다고.

그때와 똑같은 질문이 다시 한 번 던져졌다.

"후회하니, 아그리아스?"

백금발이 바람에 날렸다. 오벨리아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꿰뚫는 것 같은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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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날, 오벨리아의 납치를 저지하지 못했던 날, 기사단을 이탈하고 람자 베올브의 곁에서 싸우기로 했던 날, 동료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회한을 느꼈던 날, 아쉐에게 검을 빌려주려 했던 길지 않은 시간들, 팡을 죽이지 못하여 패배를 맛봤던 날, 그녀와 다시 싸워 결국 제 손으로 죽였던 날. 종말을 앞두고 함께해온 동료와 적에게 마지막까지 싸우자고 손을 내밀었던 날. 끝없이 싸웠고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늘 성공하지는 못했다. 실은 실패가 더 많았다.

젤테니아에서 온 소식을 들었던 날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피가 차가워지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순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아직 오벨리아의 손을 감싼 두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여린 손가락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손을 풀었지만, 오벨리아 쪽에서 멀어지는 두 손을 다시 붙잡았다. 아그리아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후회합니다. 후회해 왔고, 지금도 후회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날 당신을 떠나왔던 것을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리운 눈동자를 마주했다. 떠나지 말고 곁에 있어달라 애원했던, 자신이 져버린 얼굴을 끝없이 바라봤다. 잠깐의 꿈처럼 눈을 떼면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하지만.

"하지만...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저는 또 같은 선택을 할 거에요. 악과 맞서 싸우겠다고, 검을 잡고... 그냥...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오벨리아는 입을 열지도, 그녀를 탓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세상에 불행이 적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당하게 빼앗기고 이용당하는 일이 없기를, 선한 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지 않기를. 이발리스와, 다른 모든 세계에서. 물론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리석고 주제넘은 생각인 것을 알았습니다. 끝까지 구제할 수 없는 자들도 많았고, 그 때마다 제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꼇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고, 몇 명을 마지막 전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카오스를 막아내지 못했어요. 람자 경은 알테마의 악의 연쇄를 끊어냈지만 저는 실패했습니다. 저는...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두렵습니다. 이 정도의 나약한 힘으로 무엇을 해내리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맞서 싸운다면 희망, 포기한다면 절망."

아그리아스는 얼어붙었다. 언젠가 그랑 펄스의 전사에게 이야기했던 말을 오벨리아가 고요히 되풀이했다.

"이발리스에서도, 다른 모든 왕국들과 세계에서도, 인간은 죽어.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정말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고요한 갈색 눈에서 생전에 볼 수 없었던 깊은 통찰력이 느껴져 왔다. 동시에 오벨리아의 말은 일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녀는 스스로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지 못했다.

수도원의 시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그리아스는 아쉐를 생각했다. 팡을 생각했다. 레이브스와 클라우드와 검은 망토의 마도사와 검은 힘을 가진 사내를 생각했다. 끝까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긍지 높은 용기사와 올곧은 반란군 청년을 생각했다. 그들 중 누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혹은 죽음을 예감할 시간도 없이, 혹은 자포자기하며, 외롭게 죽어갔을 것이다. 전투를 시작하며 품었던 희망을 최후의 순간까지 안고 쓰러진 자들이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선택지가 있었고, 신에 대항한 전사들은 전부 제 의지로 싸움을 택했다.

성천사와 같은 장엄한 빛을 내리며 기도하던 갈색 머리의 여자를 떠올렸다. 눈과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따뜻한 빛으로 죽어가는 전사들을 감싸안았다.

바뀐 것은 최후의 운명이었다. 그들 모두가 인간답게 싸우다 죽고자 했고, 그걸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비록 패배했을지라도. 이발리스에서도, 그리고 디시디아에서도, 제 의지로 길을 선택하고 마지막까지 관철해나간 자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뒤돌아보지 않고 싸웠으니, 더 이상의 후회는 없노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지막 빛의 축복일까, 기억 속 그대로의 수도원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기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성직자도 수녀들도, 문을 지켜야 할 왕가의 병사나 용병도, 그들을 위협할 골타나 가의 사병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늦었지만 그 약속, 지킬 수 있게 되었네요. 바깥 구경, 시켜드릴게요."

오벨리아가 활짝 웃었다. 눈부신 웃음이었다. 아그리아스가 정중하게 손을 내밀고, 곱고 얇은 손이 그 위에 얹혔다. 왕녀와 기사는 햇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수도원의 높은 벽들도 그들이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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